웹툰 <호랑이형님 1부> 단평
판타지와 현실, 그 경계 어딘가에 휘몰아친 거대한 미메시스의 소용돌이 


아린의 아들을 수호하는 산군. 1부 최강자의 면모를 보이는 듬직한 캐릭터.




  동물을 의인화한 콘텐츠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를 수인물이라 하는데 수인물은 어린이들이 친숙하게 작품을 대하고 직관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주로 아동용 콘텐츠에 주로 차용되는 장르다. 실제로 아기공룡 둘리, 피카추, 뽀로로 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수인물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타겟을 어린이에서 사춘기 이상의 성년으로, 미디어를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 혹은 웹툰으로 옮겨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수인물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우선, 중학생 이상의 지성을 가진 독자가 의인화된 동물에 온전히 감정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수인물은 자칫하면 전개가 유아적으로 흐를 수 있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낱낱의 컷으로 스토리를 풀어가야하는 장르 특성상 동적인 이미지를 애니메이션만큼 자연스럽게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한계 또한 존재한다. 실제로 주연부터 조연, 단역까지 모두 개가 등장한 웹툰 <개판>은 참신한 주제와 탄탄한 구성으로 극 초반 평단과 독자의 눈길을 모았으나 결국 작품성만 인정받은 채 쓸쓸히 연재를 종료했다. 

  ​이에 웹툰 <호랑이 형님>이 몰고 있는 수인물 바람은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호랑이 형님은 범과 곰, 그리고 그에 대적하는 추이, 무두리(용) 등의 상상 속의 동물들이 주연과 조연, 단역까지 배역을 차지하고 있는 정통 판타지 수인물이다. 현재 국내 최대 웹툰 플랫폼의 토요 웹툰 중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으며 <개판> 이후로 평단의 눈길을 모으고 있는 수인 극화다. 촘촘한 스토리라인에 극적인 전개를 통한 작품성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흥행에 성공하며 ‘수인물도 자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현실로 맺어내고 있다. 



추이는 산군과 대척을 이루지만 독자는 이내 남자답고 통솔력있는 거친 추이에게 이내 마음을 빼앗긴다.




  호랑이 형님 1편은 지리적으로 크게 3개의 세계로 나눌 수 있다. 백두산으로 추정되는 흰 산과 중국 내륙으로 추정되는 붉은 산, 흰 산 세력을 아슬하게 견제하며 오월동주(吳越同舟)하는 서쪽 초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는 세 세력이 멸족의 위기에 처해가며 사투를 벌인 ‘항마전’ 이후 세계부터 시작한다. 

   호랑이 형님 1편의 주요 시놉시스는 ‘지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사이의 갈등이다. 작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랑이 ‘산군’은 흰 산을 지배했던 영응왕으로부터 자식을 지켜달라는 명을 받는다. 붉은 산 세력은 제2, 제3 세력과 야합하며 영응왕의 아이를 탐하고, 산군과 거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각 세력이 이합집산하고 서로 배신하는 과정에서 조명되는 고도의 심리전은 독자를 작품 속으로 흡인하고 템포 빠른 전개는 독자에게 케이퍼 무비 특유의 스릴을 선사한다.  

   작가 이상규는 민족별 건국 신화에서 서사의 뼈대를 구성하고 고전을 재해석하여 캐릭터에 살을 붙였다. 스토리를 탄성있게 추동하는 힘은 각 민족의 건국 신화에서 나온다. 초원을 지배하는 푸른 늑대에서는 몽골 건국 신화를,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동쪽의 흰 산(백두산으로 추정)에서는 고조선 건국 신화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범을 찢어먹는 추이와 황요, 비위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나오는 고전의 캐릭터들이다. 


   호랑이 형님은 독자의 감정선을 절묘하게 거스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독자가 인물과 이야기에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주인공에 잠시 빙의했던 독자가 몇 화가 지나고 나면 반대로 주인공의 상대역에 공감하며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서사 구조가 선악의 싸움이 아니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군의 바통을 이어받아 2부는 빠르가 극을 이어간다. 빠르는 스트리트 출신으로 두뇌회전이 빠르고 영리하지만 비겁하기도로 세계관 최강자이다.




   아이를 지키는 산군과 무커, 그리고 이에 대적하는 추이, 황요, 녹치의 전투는 진선미로 대변되는 도덕적 준거와 무관하다. 그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정의는 ‘생존’과 ‘번식’, ‘종족 보존’이다. 추이, 황요, 녹치는 극 초반 서사구조에서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있어 악인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극 중반에 이르면 각 인물의 속사정이 조명되면 그들 또한 하나의 생명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독자는 주인공인 산군과 무커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또 다른 화에서는 추이와 황요를 응원하는 이질적인 감정을 맛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스토리가 탄탄하고 작화가 뛰어나지만 작가의 첫 데뷔작인 만큼 군데군데 보완해야할 사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작가는 독자에게 과잉의 친절을 베풀었다. 1편은 하루 반나절에 벌어진 전투에 과거 이야기를 버무려 86화로 마무리되었다. 현재 이야기에 과거, 대과거의 이야기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플래시백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 기법을 너무 자주 차용하면서 스토리가 산만해졌다. 또한 각 시놉시스들의 액자식 구성은 유기적이라기 보다 단편적으로 연결되어 독자의 집중력을 흩뜨리기도 했다. 결국 작가가 특별 페이지를 편성해 작품의 시공간을 따로 설명하고 난삽한 구성에 대해 독자에게 공개 사과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 번째, 작가는 두뇌게임을 빙자한 불친절한 퍼즐게임을 제시하며 작품의 피로감을 가중했다. 복선과 암시는 적당한 힌트와 함께 주어질 때 비로소 카타르시스를 배가한다. 작가는 작품 내 컷과 대사 군데군데 암시와 복선을 깔아두었는데 아무런 힌트없이 불친절하게 투척한 이 장치들은 단순한 맥거핀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작가는 독자와 함께하는 추리게임이 아닌, 혼자만의 불친절한 퍼즐게임을 즐겼다.


   1편에서 서슬 퍼런 전투력을 뿜어내던 산군은 죽고, 추이는 몸통이 두동강나며 불구가 되었다. 최강의 호랑이 무커는 자식 무케를 낳았고, 영응왕의 아이는 인간과 추이, 산군의 형 빠르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해갈 것이다.

   첫 작품에 호랑이 형님이라는 거대하고도 촘촘한 세계관을 선보인 이상규 작가의 향후 행보에 주목해보자. 한국에서도 드래곤볼, 원피스에 버금가는 웹툰 원작의 대서사극이 나온다면 현재로써는 호랑이 형님이 유일하게 그 후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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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중문화평론가를 지망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해당 글은 작품을 본 뒤 제가 쓴 글입니다.
제 주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해석이나 결론이 
작가의 의도나 다른 독자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혹시 내용에 대한 수정, 보완 의견은 편안하게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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