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맨

ㆍ장르: 공포, 스릴러
ㆍ러닝타임: 124분
ㆍ개봉일: 2020.2.26.
ㆍ감독: 리워넬
ㆍ출연: 엘리자베스 모스 외
ㆍ15세 관람가

사진출처: 영화 배급사 공식 배포 이미지



인비저블맨은 웰메이드 스릴러입니다
겟아웃, 어스로 이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는 제작진이 성심껏 만든 영화입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여성의 입체적인 캐릭터에 주목했습니다.
억압과 공포에 눌린 여성이 그대로 굴복하는 게 아니라
용기를 내어 맞서 싸워 결국 자유를 쟁취하는,
신자유주의적 미덕을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줄거리를 먼저 훑어보겠습니다. 

남편에게 억압을 받던 여인, 세실리아는 바닷가의 한 저택에서 탈출을 합니다.
신경안정제로 남편을 재운 후 집안 곳곳의 cctv를 무력화한 후 탈출을 감행하죠.
탄탄한 요새처럼 보이기도하는 그 집에는 비밀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남편이 광학을 연구하는 연구소죠.


곡절 끝에 도망친 세실리아.
남편 에이드리언은 뒤늦게 세실리아의 탈출을 깨닫고 한밤 중 추격을 벌이지만
가까스로 세실리아는 미리 약속되었던 차를 얻어타면서
그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납니다. 


탈출 후 친구인 제임스의 집에서 숨어지내던 세실리아는
남편이 자신을 찾아낼 것으로 생각해 공포에 질린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자살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는데..
더욱 뜻밖의 소식은 숨진 남편으로부터 거액을 상속받게 된다는 것.
일시불이 아니라 매달 돈을 연금처럼 입금받게 될 예정입니다. 

사진출처: 영화 배급사 공식 배포 이미지


영화의 스릴러 요소는 여기부터 시작합니다.

영화제목은 정직하게 장르가 좇는 소재를 밝히고 있습니다.

인비저블맨=보이지 않는 사람인 것이죠.

세실리아는 자살한 것으로 공표된 남편의 흔적을 이 때부터 느끼기 시작합니다. 

친구인 제임스에게 이상한 느낌과 경험을 털어놓지만
지인들은 믿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인비저블맨은 세실리아의 신변에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한밤중 이불을 걷어내거나 자는 사진을 찍으며 괴롭히다가
어느순간 인비저블맨은 세실리아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시작합니다. 

세실리아의 언니 에밀리에게 죽어버리라는 메일을 보내는가 하면
제임스의 딸인 시드니에게 폭력을 가해 세실리아의 행위로 위장해버리죠.

세실리아는 그 모든 일련의 사건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에이드리언의 짓이라고 항변하지만
주변 지인들이 믿어줄리 없습니다.

결국 혼자 남게된 세실리아.
인비저블맨이 원했던 것은 세실리아의 사회적 살인이었을까요?
그래서 오갈 곳 없던 그녀가 다시 그에게 돌아오길 바란 것일까요?

결국 다락 방을 훑어보는 세실리아는 인비저블맨의 흔적을 확인하고 
페인트를 허공에 부어 투명인간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사진출처: 영화 배급사 공식 배포 이미지


여기서 포인트!



1. 감독은 입체적인 여성,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렸습니다.


세실리아는 극 초반부터 중반까지 줄곧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역할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의 존재에 전전긍긍하며 숨어지내기에 급급했죠.
인비저블맨에 의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세실리아가 찾아간 곳은
경찰서, 사회시설 등 그를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 아닌
남편 에이드리안의 저택이었습니다.
그의 실체를 깨달은 그녀는 그의 존재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 것이죠.
이는 그녀의 자존감을 되찾고 사회적 인격을 다시 살리겠다는 의도와도 합치합니다. 

그녀가 다시 저택으로 찾아갔다는 것은
그녀를 사회적으로 살인한 그의 심부에 들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인 것이죠.

전 남편은 아직 그녀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와 그녀만이 아는 첫 데이트날을 비밀번호로 설정한 연구실을 밀고 들어가자 
그녀는 투명옷을 발견합니다. 

이제 그녀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됩니다.
광학 박사였던 남편이 결국 연구에 성공해 빛의 굴절을 이용해 사람을 투명하게 만드는 옷을 개발해낸 것이죠.


2. 진정한 공포는 안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할 때 일어난다.


친구인 제임스도, 언니 에밀리도 세실리아를 믿지 않습니다.
세실리아가 진정성 어린 눈빛과 눈물로 호소를 해도 모두 세실리아를 의심합니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사회적으로 살해당하고 인격적으로 고립되어 버립니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비틀어 보게 만듭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과연 절박한 상황에서 나를 믿어줄 것인가?
반대로 난 그 상황에서 옆사람을 믿어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관객에게 방백처럼 들리죠.
방백은 주인공의 대사가 관객에게는 들리지만 
다른 극 참가자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으로 설정한 영화 장치입니다. 

세실리아의 진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리지만
영화속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기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현실과 비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보이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극이 전개되며 이 깨달음이 공포로 치닫게 됩니다. 

감독 리워넬은 관객의 이 서스펜스를 유도하며 진정한 공포의 실체를 관객에게 깨닫게 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출처: 영화 배급사 공식 배포 이미지




이후 영화는 진실과 보이는 것, 그리고 거짓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교차하며
수많은 오해와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며 관객을 결말로 수렴합니다.

심지어는 결말조차 열린 결말로 맺어버리죠.

관객에게 자신의 추리와 판단으로 공포의 실체를 느껴보라고 한 감독의 의도인 것 같습니다.

한 여름 밤에 리워넬 감독이 선사하는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로
무더위를 쫓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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